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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낙서장/시

쉽게 씌어진 시(詩)

by 은혜입은자 2025. 6. 6.

쉽게 씌어진 시(詩)  - 윤동주(1917~1945, 북간도 명동촌)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윤동주 시집 - 그의 시와 인생」(권일송 편저, 청목문화사, 1987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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