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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나의 낙서장/끄적끄적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by 은혜입은자 2025. 4. 3.

2021.7.20.(화)


1.지난 봄, 아내와 함께 걷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동네 작은 산을 틈틈이 걸었다. 동네 주민들이 사랑하는 그 산은 오름직한 산이다. 산을 올라보지 않은 사람의 눈에도 만만해 보일 정도로 호락호락한 산이다. 산 입구에서 눈을 위로 살짝 치켜들면 정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비뚤비뚤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오솔길은 시작과 끝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오솔길 좌우는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듬성듬성 있을 뿐 그 흔한 풀 한 포기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왔건만 작은 산은 여전히 앙상한 나뭇가지로 볼품없었고, 산길을 따라 불어 내려오는 바람으로 을씬스러웠다.

2.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 될 쯤 다시 찾은 작은 산은 그때 그 산이 아니었다. 산 입구에 서는 순간 지난봄에 보았던 그 호락호락한 산은 온데간데없었다. 앙상했던 나뭇가지는 초록빛 풍성한 잎으로 변해있었고, 어렴풋이 보이던 정상은 좌우로 아무리 몸을 돌려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와 나뭇잎으로 덮여버린 오솔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한 발을 내딛어야 했다. 텅 비어있던 오솔길 좌우는 어언간 이름 모를 잡초들에게 점령당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바지 입고 온 나의 양다리는 작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3.나는 불과 4개월 만에 변해있는 산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작은 산은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산이 오늘 보고 있는 산이 아니고 오늘 보고 있는 산이 내일 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어제의 산과 오늘의 산, 내일의 산이 다르다. 또한, 그 산을 바라보는 나 또한 다르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는 같을 수 없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될 수 없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될 수 없다. 찰나처럼 지나가는 이 순간조차도 그대도 있는 것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미세하지만 변하고 있다. 다만,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다(宇宙中唯一不變的是變化)”고 말했다.

4.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간에, 시간을 아끼며 최선을 다하든 마냥 지루한 시간을 보내든 간에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죽은 것이다. 반대로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변한다는 것은 곧 생명이다.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변한다. 성장과 노화의 쉼 없는 변화가 멈추는 그 순간이 곧 죽음이다. 

5.그대로 있으면 죽은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선 움직여야한다. 단지 살기위한 몸부림이나 고귀한 성장과 성숙이 목표가 아니어도 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르듯 이 시간을 살아가는 이 순간조차도 그대로 있는 것은 없음을 잊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문득 나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본다. 무엇보다 외모는 비육지탄이다. 삼국지의 유비가 어느 날 변소에 갔다가 넓적다리에 유난히 살이 찐 것을 보가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듯이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나는 배와 허리 살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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