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1.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들의 비유를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비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모함하여 죽이고자 의인을 가장한 정탐꾼들을 세웠습니다. 정탐꾼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난처한 질문을 하여 책잡으려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우리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간사한 꾀를 아시고,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번역은 ‘바치라’가 아니라 ‘돌려드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바친다고 하지 않으시고 돌려준다고 하신 것은 그 권위가 받아야 마땅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그들이 묻지 않았던 하나님의 것도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가이사와 하나님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하신 분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만드십니다. 데나리온을 만든 가이사가 돌려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도 마땅히 있다는 것입니다. 데나리온에 그려져 있는 가이사는 유대인들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물질을 돌려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사실상 가이사의 것 중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가이사의 통치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시면서, 동시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어라 함으로써 그의 통치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2.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하였지만, 예수님은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 안에 가이사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를 벗어난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과 교회, 세속과 거룩을 구별하려고 노력합니다. 평일보다 주일 하루를, 일주일에 5일 출근하는 직장보다는 일주일에 하루 가는 교회를, 직장동료보다는 신자를, 직장과 가정보다는 교회를 더 거룩하게 생각하고 구별합니다. 이 영역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저 영역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이라 여깁니다. 이렇게 구별하고 구분하는 것이 바로 형식적인 종교이며 종교적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와 종교적 삶을 살아가던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두 영역에서 살아가며, 두 영역을 연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권위와 통치 아래 분명한 믿음이 가이사의 나라에도 흘러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 우리 안에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직장과 가정, 세상 속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신앙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이제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와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합니다. 모세의 법에 따르면 형이 자식을 낳지 못한 채로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동생이 결혼하여 상속자를 세워야 합니다. 만약, 일곱 형제가 모두 이런 식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고 여자까지 죽는다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가 이들의 질문의 핵심입니다. 이들은 부활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개념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조롱하고 당혹하게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 역시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대비시키시며 이 세상의 일을 근거로 저 세상의 일을 파악할 수 없으며, 저 세상은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4.사두개인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실상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의 유불리에 따라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부활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들은 부활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이익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며,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예수님이 눈에 가시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성경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 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영향을 많이 받은 체하지만, 실상 성경을 잘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성경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기초한 종교가 아니라 성전에 기초한 종교이며, 하나님이 본질인 종교가 아니라 사람이 본질인 종교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중심이 아니라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종교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성경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에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답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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