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1.예수님께서 감람산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도착했을 때, 제자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며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면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혹여 주인이 “어찌하여 푸느냐?”고 물으면, 제자들에게 "주가 쓰시겠다"라는 답변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던 옷을 나귀 새끼 위에 깔고 그 위에 예수님을 태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내리막길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곧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운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환호하는 소리에 충격을 받고 불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 제자들을 꾸짖고 조용히 시켜 달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이런 요구에는 “보잘것없는 마을 나사렛에서 온, 천박한 목수 출신의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고치건 말건, 눈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했건 말건, 심지어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조용하면 돌들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시고 기뻐하시거나, 그렇게 환호하는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격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장래에 폐허가 될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3.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까지의 대장정이 거의 다 마쳐가고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줄곧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입성 소식을 듣고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모두 환호하며 기뻐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계속 논쟁을 벌이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이라 부르며 따르는 것을 보며,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평화와 회복을 위해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주셨건만, 예수님을 정치적 왕으로 이해했던 제자들은 무지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을 채우려고 몰려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4.예수님은 심판자가 아닌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죄인에게 평화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영원한 화평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따르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과 기대를 성취해 주시리라고 기대하면서 따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처럼 될 것입니다. 혹은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환호하다가 기대가 꺾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무리들이 될 것입니다. 또는 바리새인들처럼 처음부터 왕으로 영접하기를 거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죄의 저주 아래 고통받는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겸손히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나만으로도 깊이 감사하며 진정으로 찬양을 올려드리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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