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의 은 1,100을 도둑질했다가 어머니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 이를 스스로 고백하며 다시 돌려줍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은을 돌려주자 저주 대신 여호와께 복 받기를 바라며, 그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려 한 신상을 새기고 부어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은 200을 은장색에게 주어 신상을 만듭니다. 미가의 집에는 이미 신당이 있었기에 그 신상들을 모시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며, 자기 아들 중 하나를 세워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얼마 후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젊은 레위인이 거할 곳을 찾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자, 미가는 그에게 연봉 은 십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줄 테니 자신을 위해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제안합니다. 레위인이 미가의 집을 만족스럽게 여겨 그와 함께 거주하고 미가의 제사장이 되자, 미가는 이제 레위인이 자신의 제사장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 이 사건은 이스라엘 내부의 영적 타락과 가나안화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의 도둑질에는 저주를 퍼붓다가 아들이 사실을 자백하자 쉽게 축복으로 바꾸고, 여호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금지된 우상을 만드는 종교적 혼합주의를 보입니다. 미가 역시 하나님의 성막과 규례를 무시한 채 개인 신당을 차리고 가문의 우상인 드라빔과 에봇을 만들며 자기 아들을 마음대로 제사장으로 세우는 등, 하나님을 자기 복을 얻기 위한 기복주의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삼손이 사소한 영적 경계선을 허물며 타락해 갔듯, 이 가정 역시 사소한 불순종과 안일함으로 신앙의 경계선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더욱이 거룩한 분별력을 가져야 할 레위인마저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개인의 물질적 유익과 안정을 위해 개인 가문의 제사장이 됨으로써 소명을 버렸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왕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 대신 내 생각이 기준이 되고, 하나님의 뜻 대신 내 욕망이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은 단순히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욕망을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3. 우리는 미가의 가정처럼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내 물질적 유익과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종교적 기복주의와 혼합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뜻보다 내 만족을 구할 수 있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나의 인정과 성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가의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타협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삼손이 작은 영적 경계선을 반복해서 허물다가 결국 무너졌던 것처럼, 미가의 가정 역시 작은 불순종과 안일함을 가볍게 여기면서 신앙의 경계선을 무너뜨렸습니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는 세상의 위험한 메시지나 내 눈에 좋은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정의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레위인처럼 세상의 조건과 물질적 안정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소명과 위치를 쉽게 버리거나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내 삶의 진정한 왕은 나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고백하며,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하는 영적 안일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 앞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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